
어릴 때 부모님은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 중에서도 영어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아셨기 때문에 권하셨을 것 같은데
어린 청개구리였던 나는 선생님은 싫었다.
사춘기시절, 나의 진로를 부모님이 정해준다는데 그 누가 따를소냐!
나는 사실 우주과학자, 천체관측학자가 되고 싶었다.
밤 하늘에 보이는 반짝이는 별을 보며 살고싶었던 마음때문이었겠다.
어느날 밤, 하늘을 쳐다봤을때 은하수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신비로웠다.
게다가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봤던 최애 드라마는 스타트랙이었으니 우주와 sf에 대한 동경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만일 부모님이 나에게 선생님이 되면 방학때 쉴 수도 있고 쉬는 동안에도 월급은 나오고 야근도 없고 정년도 보장된 직업이다 라고 했으면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다. 아마 또 귓등으로도 안들었겠지 싶다.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양,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않는 멋진 사람이 될거야!! 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까.
어릴 때 상상했던 30살의 나는 대기업에 다니며 딱 떨어지는 정장을 차려입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척척 해내며 영어로 프리토킹과 회사업무가 가능한 그런 커리어우먼이었으니까.
천체관측이 꿈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이과를 선택했고
수능을 봤으나 꿈은 꿈일 뿐 현실은 점수에 맞춰 겨우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갔다.
그때 당시 휩쓸었던 광고, 공대 아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공대에 진학한 나는 공대 아름이답게 신나게 놀았고 또 놀았다.
그렇다고 뭔가 멋지게, 제대로 놀지도 못한게 그냥 친구들이랑 홍대니 동대문이니 놀러 다니고 남자친구랑 학교 앞 식당에서 밥 먹고 피씨방가고 그런게 전부라 경험이랄 것도 없이 시간만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 만끽해보는 자유로움에 학교는 사람 만나러 가는게 즐거웠고
그때 한창 유행한 피씨통신에 빠져서 매일 사람들과 벙개와 정모를 했다.
전공공부는 흥미가 별로 없었지만 그때는 딱히 공부를 해야하는 의미를 못찾았기 때문에 겨우겨우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을 했고
전공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작은 중소기업에서 시작해서 이직에 이직을 거쳐 중견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결혼과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는 참 호기롭게 그만둔 것 같다.
아이가 어리니 엄마인 내가 직접 돌보다가 어린이집에 가면 재취업해야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회사 말고 요즘 정부에서 많이 권장하는 시간선택제로 다녀서 일과 가정 모두 잘 해내야지
하지만 경단녀의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결국 이일 저일 닥치는대로 하게 되었다.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무료라는 이유로 구에서 주최하는 재취업과정을 수강하고 관련 일을 해마다 하며 아르바이트처럼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지만
해마다 좌절감 우울감과 함께 이것저것 배우며 또 좌절하며 약 10년이 지났다.
그렇게 화려한 20대,
치열한 30대
그리고 방황하는 30대를 지나
지금 40대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방황하고 실망하며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고
여전히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한다.
나의 40대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누구엄마도 좋지만 사회인으로써 살고싶다.